설은 음력으로 쇠는 새해 첫날로 한국의 큰 명절이다.
우리 집은 명절이면 차례를 지냈고 연휴 기간은 늘 분주했다. 연휴 첫날은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에 가족이 합세하여 차례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면서 자정까지 식당 손님을 받다가, 새벽에 식당 정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대충 씻고는 두어 시간 동안 까무룩 잠이 들었다. 둘째 날 어둑어둑한 새벽녘에 일어나 집을 한바탕 쓸고 닦고 나면, 집구석 어딘가 조용히 박혀있던 접이식 상을 펼치고 준비한 음식을 올려 차례를 지냈다. 한숨 쉴 새도 없이 뒷정리를 끝내고 근처 할머니 댁으로 가서 다시 차례를 지내고 반쯤 감긴 눈으로 뒷정리를 반복했다. 해가 기울 때쯤이나 돼서야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은 푹 쉬지만 정작 마음은 불편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쉬는 날인만큼 잔소리와 다툼이 빠질 리 없기 때문이다.
고되었지만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는 일은 좋았다.
대야에 수북이 쌓인 동그랑땡 소를 엄마에게 건네받으면, 나는 소를 동그랗게 빚고 밀가루 옷을 입혀서 다시 엄마에게 건넸다. 곧이어 엄마는 어딘가에서 커다란 전기 팬 두 대를 꺼내고 전을 지질 계란물과 기름을 준비했다. 한 팬은 산적이나 명태전을 지지는 엄마 몫이고 다른 한 팬은 동그랑땡을 지지는 내 몫이었다. 한참을 지지다 보면 어느 순간 배 나온 달인이 되어있는데, 처음에는 치명적인 냄새를 견디지 못해 주워 먹고 나중에는 실패한 걸 하나씩 주워먹고 또 일이 익숙해지면 지루하고 피곤하니 하나씩 주워먹는 탓이다.
열심히 지진 전과 엄마가 만든 갖가지 나물은 식당 손님과 주변 이웃에게 돌아갔다. 우리처럼 명절까지 일하는 주변 식당, 가게, 포장마차로. 음식을 받는 사람들의 표정과 엄마의 표정 그리고 그걸 볼 때의 기분은 여전히 기억 깊숙이 박혀있다.
지금은 해외에 살고 있는 데다가 차례를 지낼 일도 없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평소보다 넉넉히 장을 본다. 조금이나마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다. 그냥 넘어가자니 그때의 음식과 사람들의 표정들이 떠오르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