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재래시장이 활발하다. 동네마다 특정 요일에 장이 열리고 사람들로 북적인다. 프랑스에서 생산되거나 주변 국가에서 수입된 농·축·수산물이 각 점포에 진열되어 있다. 오래된 물건이나 먹거리, 의류를 판매하기도 한다. 볼거리가 많고 식재료가 신선해서 보통 마트 대신 시장을 이용한다.
시장은 마트와 달리 '사람을 통해서 물건을 산다'라는 느낌이 든다. 마주보며 짧든 길든 대화를 나눈다. 인사말을 건네거나 안부를 묻고 구입할 물건의 양과 값을 묻는다. 때로는 농담이나 사설이 덧붙기도 한다.
프랑스어가 서툴러 대화가 힘들 때도 있다. 주문이 복잡할수록 조리 있고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해야 하는데, 간단한 문장을 떠올리기도 쉽지 않으니 꽤 난감하다. 특히 고기를 살 때는 고기 종류와 부위, 무게를 말하고 필요하다면 손질까지 부탁 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을 단단히 차려야 한다.
한 정육 점포에서 진열대에 없는 것을 주문한 적이 있다. 원하는 고기 부위는 있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구체적으로 원하는 것을 설명해야 했다. 지금보다 프랑스어가 서툴던 때라, 최선을 다해 설명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영어로 물어도 돌아오는 것은 알아듣기 힘든 프랑스어뿐이었다. 허둥거리며 핸드폰 번역기를 켜고 부지런히 자판을 눌렀다. 그러던 중 갑자기 주인이 매대 앞으로 나와 옆 점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옆 점포 주인과 뭐라고 얘기를 나누더니 이윽고 둘은 함께 내 쪽으로 걸어왔다. 알고 보니 번역을 부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도 마찬가지로 영어가 서툴렀다. 결국 셋은 손짓, 발짓을 써가며 열심히 의사를 전달했다. 한참 후에야 원하는 것은 없다는 걸 알았고, 밍숭맹숭하게 웃으며 헤어졌다.
나에게 선입견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를 할 줄 알지만, 자국어 자부심이 높아서 일부러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까칠하고 차갑다고 생각했다. 시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선입견은 점차 사라졌다.
채소 집 주인은 내가 물건을 고를 동안 계산대 근처에 서서 허브 한 뭉치를 만지작거린다. 계산이 끝나면 별말 없이 봉투에 쓱 하고 껴 넣는다. 매번 종류가 조금씩 바뀐다. 파슬리, 민트, 타임 등 다양하다.
과일 집 주인은 상자 깊숙이 있는 싱싱한 과일만 골라 담는다. 바쁘지 않을 때는 간단한 프랑스어를 알려주고 연습도 시킨다.
다른 과일 집 주인은 목소리가 우렁차고 말이 무척 빠르다. 반대로 나는 서툴고 느리게 주문한다. 답답할 법도 한데, 끝까지 차분하게 듣고 주문한 것을 하나씩 담는다.
그렇다고 기분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도 더러 있다. 상한 과일을 골라주는 사람도 있고, 지나가며 구경하는데 살 것을 강하게 권하는 사람도 있다.
시장의 모습은 프랑스든 한국이든 비슷하다. 시장에 가면, 물건이 있고 사람이 있다. 사람을 통해야 물건을 살 수 있다. 언어와는 상관없이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쩌면 시장뿐만 아니라 어디든 비슷하지 않을까. 선입견을 걷어내고 보면, 그저 사람이 있을 뿐이다.